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보의 난 (문단 편집) ==== 언제 출발하나? ==== 7월 갑자일[* 역시나 경오일이 초하루라 갑자일은 없다.午가 子로 잘못 쓰인 것이라면 25일이다.], 다리를 건널 때 곽사의 군대가 이각의 군사를 막으며, 전투가 벌어질 뻔하나 유애와 [[양기(삼국지)|양기]]의 힘으로 패릉에 무사히 도착한다. 따르던 자들은 모두 굶주렸으나 이번에는 상황이 조금 더 나아서 장제가 지위에 따라 차등 있게 음식을 주었다. 한편 이각은 지양에 주둔한다. 그리고 곽사는 또 황제를 고릉으로 모셔야한다고 주장했다. 공경들과 장제가 홍농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여 크게 회의를 열어서 그것에 관하여 의논했으나 결정하지 못했다. 결국 황제가 [[단식투쟁]]을 한 다음에야 곽사도 고집을 꺽고, 가까운 현으로 가는 것은 괜찮을 것이라고 말한다. 8월에는 신풍에 도착한다. 하지만 이때 가후는 천자에게 인수를 반납하고, [[단외]]라는 자에게 의지하러 떠나 버리고, 곽사가 변심하여 [[오습]]을 시켜 학사를 불태우고 천자를 미로 끌고가려하니 충집이 이를 알고 양봉, 동승, [[양정(후한)|양정]]에게 밀고하여 이를 막으니, 곽사는 남산으로 도망치고 만다. 그리고 10월 1일, 곽사의 수하인 [[하육]], [[고승(삼국지)|고승]]은 승여를 협박해 곽사의 말대로 서쪽으로 돌려보내려 하지만 유애는 어서 황제에게 한 군영으로 가라고 했고[* 곽사, 양정, 동승, 양봉은 각자 군영을 운영하고 있으니 황제보고 어떻게 할 것인지 선택하라는 것이었다.] 황제는 양정과 동승의 호위를 받아 양봉의 진영으로 간뒤 그들의 힘을 빌어 곽사군을 격퇴하고, 10월 5일 화음에 도착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